허리 다쳐 지팡이 의존 등 고생 중
산행서 마주한 마애불 자애의 미소
마음가짐 더 중요하다 자신감 얻어
‘건강한 노년삶’ 위해 걷기 등 운동
존엄히 생 마감하는 ‘웰 다잉’ 중요

<UE 칼럼>

이선옥  수필가·전 울주명지초 교장
이선옥 수필가·전 울주명지초 교장

 봄이 되자 사람들이 산책길에 즐비하다. 자유자재로 걷거나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이리도 부러운 적이 있었던가. 허리를 다쳐 고생하다 보니 행복의 기준이 달라졌다.

 텃밭에서 돌을 굴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허리를 다쳤다.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는 소리만 믿고 안심하며 낫기를 기다렸는데 다섯 달이 넘도록 나을 기미가 없었다. 다시 MRI를 찍었더니 골다공증 때문에 2차적으로 뼈가 부러졌단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쳤으니 평생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며 걷기나 열심히 하란다. 

 산골에 살았던 나는 산 넘고 물건너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방학을 빼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0리 길을 매일 왕복으로 걸었으니 어찌 건강하지 않고 배기랴. 나의 뼈는 강하고  언제나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해 전부터 걸핏하면 허리를 다치거나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퇴행의 신호가 왔는데도 무시하고 몸을 함부로 쓰다가 오늘의 비극을 맞은 셈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함을 진작 깨닫지 못한 우매함을 탓할 수밖에 없다.  

 허리나 고관절을 다쳐서 누워 지내다가 죽는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보았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될까 엄청 두려웠지만 이렇게 아기처럼 걸을 수 있다는 게 여간한 행복이 아니다. 요즘은 한 30분쯤 지팡이에 의존하여 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학회에서 열암곡 성지순례를 간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직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마애불상을 친견하고 싶었다. 주차장에서 800m 정도를 오른다고 하니 스틱 2개에 의존하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엄두를 냈다. 단순히 운동만을 위해서가 아닌, 약해진 심신을 절대자에게 의존해 보려는 심사였는지도 모른다. 마애불까지의 거리는 짧아도 산은 산이라 가팔랐다. 바위를 오르내릴 때는 잘 못 될까 봐 용을 써서 걸었더니 허리와 다리를 대신해서 스틱을 잡은 팔과 어깨가 아팠다. 

 마애불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내 허리쯤이야 어찌 아프다고 명함이나 낼 수 있을까. 80톤에 달하는 바위를 지고 앞으로 넘어진 마애불이 코를 바위 바닥과 겨우 5cm를 띄운 채 얼굴을 보전하고 있다. 수백 년 세월을 거꾸로 엎어져 있으면서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불가사의다.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고통 속에서도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음은 또 무엇인가. 아프다고 맨날 징징대던 내가 부끄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산행에서 마애불의 무언의 설법을 듣고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물리적 자세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니 금방 허리가 나을 것만 같다. 

 언젠가부터 우리 삶의 모토가 '잘 먹고 잘 살자!'에서 '잘 살고 잘 죽자!'로 바뀌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고령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연명치료를 거부하면서 안락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세시대라 하지만 걸어 다닐 때까지만이 인생이다. 목숨만 부지하는 무의미한 삶을 맞을까 봐 염려하지 않는 노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2019년 기준, 평균 73,1세로 OECD 국가 중 최상위라고 한다. 의료복지가 잘 된 덕이기도 하겠지만 국민들이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 결과이기도 하리라. 특히 노인들에겐 건강 문제가 가장 핫한 화제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단, 취미 활동, 인간관계 등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제를 다룬 정보가 넘쳐난다. 이 가운데 가장 강조되는 것은 단연코 운동, 그 중에서도 걷기가 아닐까.

 누죽걸산이라는 말이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를 뜻하는 한글식 사자성어라고 한다. 한문식으론 와사보생(臥死步生)이란다. 좀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걷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절실하다는 뜻이리라. 둘레길을 조성하고 맨발 걷기 길을 꾸미는 일에 지자체가 열중하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건강이든 뭐든 잃기 전에 잘 지켜야 한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노년에 육체 못지않게 지켜야 할 게 또 있다.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간관계를 잘 해야 한다. 있을 때 잘하는 것이야말로 잘 살고 잘 죽는 것과 맥이 통한다. 

 걸을 수 있기에 행복하지 않은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에 친구와 함께 값진 삶, 멋진 죽음을 위하여 지치도록 걸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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